일제시대(1910~1945)하면 광복에 굶주린 선량한 조선인들을 혹독한 고문과 가혹수사로 탄압하는 일제의 앞잡이 순사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정작 형사사법 시스템의 모범이거나 모델로 널리 인식된 미국 사법시스템하에서도 ‘3급 수사’라는 이름으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반복하여 자백을 이끌어내는 일이 1940년대까지는 일상화된 일이었고, 심지어 1960년대까지도 드문 일은 아니었다.
3급 수사의 유일한 목적은 경찰관들이 의도한 범죄의 흐름과 논리에 맞는 범행을 자백받는 것에 있다. 3급 수사가 더욱 무서운 것은 실제로 많은 경찰관들이 3급 수사야 말로 진실에 접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고, 3급 수사는 경찰관의 책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일단 범죄사실의 전부나 일부에 대하여 자백을 하게 되면 3급 수사는 더욱 탄력을 받는다. 심지어 범죄사실에 배치되는 것 같은 증거나 진술, 정황조차도 확증편향에 의해 자백을 명백히 보강하는 증거로 돌변하게 되고, 폭력과 폭언, 회유를 정당화시킨다.
미국 경찰은 194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피의자신문 훈련 절차를 거쳐 3급 수사의 위법성과 무용성을 지적하면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폭언과 폭행은 불안한 피의자의 심리를 조종하고 기만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였다.
3급 수사의 대안으로 개발된 리드 심문기법 등 정교한 심리적 신문 방법은 마치 경찰이 유도하는 질문에 ‘예’라고 답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여기서 인정하면 당장의 곤경을 피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피해자에게 미안하지는 않으세요.”
“어쨌든 피해자가 상처를 입었잖아요.”
“저도 선생님 심정 충분히 이해하지만, 피해자가 있지 않습니까.”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눈 앞의 수사관과의 사이에 놓인 갈등의 벽이 한번에 무너지고, 마음의 짐은 덜 수 있지만, 모든 자료들, 심지어 내가 자기방어를 위해 밤새워 챙겨온 온갖 자료들까지도 나 자신의 ‘범죄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호도된다.
흔히 조사를 받는 사람의 입장을 심판도 없이 헤비급 프로복서와 맞붙는 플라이급 아마추어 선수와 비교한다. 나름 최선을 다하겠지만 호흡조차 제대로 고르기 어렵다.
조사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짧게 물어보고 이렇다할 변명의 기회도 없이 ‘미안하다’는 한마디면 조사가 끝나버리기 쉽상인 시대다.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말할 것인지, 준비할 시간을 합리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지, 나를 죄를 짓고도 사과하지 못하는 파렴치한인양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조사자의 편견을 어떻게 깰 것인지 더욱 더 깊은 고민과 성찰이 요구되는 지금이다.
2021. 7. 5. 김변
지금도 대구에 계시는 某부장판사님의 재판부에서 공판관여를 할 때의 일이다.
교통이 용이하지 않은 작은 시골마을에서 이장님이 50cc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장보러 가시는 할머니를 태워드리게 되었다.
이장님이 고령의 할머니가 뒷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오토바이 오른쪽에 내려서 양손으로 오토바이를 잡고 있었는데, 힘겹게 오토바이에 오르던 할머니가 삐긋하면서 엑셀버튼을 건드리는 바람에 오토바이가 그대로 튕겨나가고 말았다. 할머니는 이렇다할 치료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경찰은 즉시 아래와 같은 죄명으로 이장님을 입건하였다.
"제268조(업무상과실ㆍ중과실 치사상)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이장님은 시골사람 입장에서는 거액인 2,000만원에 유족과 합의를 하였고, 수사과정, 공판 내내 고개를 푸욱 숙이고, '잘못했습니다'만 반복하였다.
'사람이 죽은 사고에 자백하고 합의까지 했다면야'하는 안이한 생각에 별다른 준비나 입증계획도 없이 공판에 들어가서 '공소사실의 요지'를 낭독하는데 부장판사님의 갸오뚱하는 눈빛이 읽혀진다. '아차' 싶었다.
부장판사님의 뇌리에는 '오토바이 운전자가 뒷자리에 동승하려는 호의동승객이 미끄러지면서 엑셀버튼을 오작동할 가능성을 예견하고 이를 방지하여야 할 주의의무까지 부담하여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끝까지 자백하려는 이장님에게 직권으로 국선변호인까지 붙여 주었는데, 심지어 다음 기일에 국선변호인조차 '피고인이 자백하고 깊이 반성'한댄다.
결국은 끝끝내 자백하는 피고인(이장님)에 대하여 예견가능성과 기대가능성을 인정할 수 없는 불행한 사고에 불과하다는 취지로 무죄가 선고되었다(물론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은 좀 다른 문제다).
불행한 사고로 죄책감에 시달리던 이장님 입장에서는 훌륭한 판관(判官)을 만나는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 그러나 불행도 행운도 결국 우연의 일종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찰, 검찰에서 알아서, 법원에서 알아서 심지어 청와대 나랏님이 알아서 나의 억울한 사정을 속속들이 살펴봐 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절친도 나를 믿어주지 않고, 심지어 변호인조차 나를 믿지 않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누군가가 나의 억울함을 해결해주리라는 바램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사실은 필연적으로 민완형사나, 베테랑 검찰수사관, 심지어 나의 변호인 조차도 "설득"이 필요한 보통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중차대한 신병을 우연과 행운에 맡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닐까.
2021. 7. 6. 김변